어제(26일) 밤에 백령도 부근에서 해군의 초계함이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고, 이에 따라 청와대 긴급안보관계장관회의가 소집되었다. 내가 자주 서식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이 회의가 소집되었다는 말과 함께 아래와 같은 목록이 올라왔다. 친구가 보내준 건데 사실이냐고 하면서..
대통령 이명박 (면제)
국무총리 정운찬 (면제)
간첩잡는 국정원장 원세훈 (면제)
안상수 원내대표 (면제)
최시중 (일병귀휴, 아들 면제)
특별보좌관 강만수 (면제)
백희영 여성부장관 (아들 공익, 정신병->유학)
윤증현 재경부장관 (면제)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면제)
이만의 환경부장관 (면제)
김경한 법무부장관 (면제)
백용호 국세청장 (이병 소집해제)
김황식 감사원장 (면제)
윤여표 식약청장 (면제)
정정길 대통령실장 (면제)
원희룡 혁신위원장 (면제)
장수만 국방부차관(면제)
내가 이걸 보고 처음에 든 생각은, '이거 100% 조작되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요즘들어 인터넷 상에 떠도는 글이나 자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것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일단 의심을 해보고 사실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이거든. 그래서 직접 찾아봤다.
공직자등의병역사항 어쩌구 하는 법률에 따르면 병무청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직자의 이름과 소속 기관만 알면 병역사항을 조회해볼 수 있다.
일단 대통령 본인과 국무총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병역 면제인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얘기이기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최시중이나 강만수, 원희룡 등은 왜 이 목록에 포함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패스. 나머지는 대부분 장관이나 청장 등인데,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15개 부서의 장관들을 모두 다 조사해봤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면제 1968년 병종 제2국민역 질병 (진구성탈구 좌슬관절 운동제한 고도)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군필 1968년 공군 중위 전역
(장남 안정훈 신장체중으로 1993년 제2국민역 판정 면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군필 1972년 육군 중위 만기 제대
(장남 윤현준 군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현인택 통일부 장관
군필 1980년 육군 상병 만기 제대
(장남 현승민 미필. 89년생으로 현역병입영대상)
이귀남 법무부 장관
군필 1978년 육군 상병 만기 제대
(장남 이형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차남 이형민 육군 이병 소집해제)
김태영 국방부 장관
육군 대장 군복무중
(장남 김대업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이달곤 행정안전부 전 장관(3월 4일 퇴임, 현재는 공석)
군필 1980년 해군 상병 만기 제대
(장남 이근웅 공군 사관후보생 군복무중, 차남 이근영 89년생으로 미필, 현역병입영대상)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군필 1977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장남 유대식 군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군필 1973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장남 장영근 육군 이병 소집해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군필 1980년 육군 이병 소집해제
(장남 최규형 만성폐쇄성 페질환으로 2005년 제2국민역 판정)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여성
(장남 김정민 군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이만의 환경부 장관
면제 1971년 생계곤란으로 입영기일연기 후 보충역 판정. 1974년 장기대기로 소집면제
청문회 시 병역기피 의혹 제기
(장남 이기대 육군으로 군복무 중)
임태희 노동부 장관
군필 1985년 공군 중위 만기 제대
(자녀는 조회 안됨)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 여성
(장남 정헌구 군필 육군 이병 소집해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면제 1969년 병역처분취소, 1972년 입영 후 귀가, 1974년 보충역 판정, 1975년 장기대기로 소집면제
(장남 정성욱 위절제술로 제2국민역 면제, 차남 정진욱 군필 육군 이병 소집해제, 3남 정재욱 군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청문회 당시 본인 및 자녀들의 병역 의혹이 제기됨
15명의 장관들 중에서 여성이 2명, 나머지 13명 중에서 병역을 면제받은 장관은 3명. 10명이 성공적으로 병역을 마친 것(게다가 국방부장관은 현역 장군이기에 여전히 복무중)을 고려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수치는 아니다. 장관들의 자녀 병역사항도 함께 확인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면제의 비율이 높은 것 같지는 않다.
이외에도 포함된 청장급이나 대통령 직속기관장 중에서는 면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백용호 국세청장
군필 1980년 육군 이병 소집해제
(장남 백승화 육군 군복무중)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면제 1983년 생계곤란으로 소집면제
(장남 윤지원 군필 공군 병장 만기 제대, 차남 윤지수 제2국민역 면제 질병명비공개)
김황식 감사원장
면제 1972년 부동시로 제2국민역 판정
(장남 김용한 군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면제 1976년 질병으로 소집면제
(장남 원성혁 군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장수만 국방부차관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허위사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이 국방부 차관에 오를 수 있을까?
장수만 국방부 차관
군필 1979년 해군 중위 제대
(장남 장경준 군필 육군 병장 만기 제대)
정정길 대통령실장도 면제이긴 하다. 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정길 대통령실장
면제 1965년 근시고도양안으로 제2국민역 판정
(장남 정인규 육군 중위 정년 제대)
이 자료를 써놓고 드는 생각인데, 생각보다 고위공직자들의 병역 면제 비율은 높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런 '병역 면제자 명단'을 처음 접하게 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이럴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군.' 그러나 중요한 것은 '면제자' 명단이라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면제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병역을 정상적으로 이행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면제보다는 군필의 수가 훨씬 많고. 이것이 함정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이 자료는 허위자료다. 검색해 본 결과 2008년부터 나돌던 자료인 것 같은데, 2010년 지금은 장관들이 몇몇 바뀌기도 했고 그나마 아예 군필을 면제라고 허위로 적어놓은 분들도 몇명 있다. 실제로 2009년 말에는 청와대 이동관 홍보수석 및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병역사항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네티즌들을 고소하기도 했다.
네티즌들을 고소한 것 자체를 가지고 비판하는 글들도 있던데, 멀쩡하게 병역을 마친 사람을 면제라고 적어놓은 글이 인터넷에 떠도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게다가 일반인도 아니고 공직자인데 말이지. 아니 애초에 허위사실을 왜 만들어서 유포하는 걸까? 실제로 면제를 받은 공직자들을 적어놓고 비판해도 충분할 일인데, 왜 사실을 왜곡해서까지 비난하려 하는 걸까?
병역 면제를 받고 현재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3명의 청문회 당시에도 그러했듯이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주로 나오는 떡밥이 병역이나 탈세 등인 것도, 고위 공직자들의 병역 사항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면제를 받은 사람들의 의혹이 개운하게 해소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지만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허위 사실을 지어내는 건 곤란하단 말이지.
고위 공직자들의 병역 문제는 이번 정부에서만이 아니라 예전부터 꾸준하게 제기되어 오는 문제이고, 이명박 정부를 병역면제 정부라고 비난을 하려면 이명박 정부의 고위공직자 중에서 본인 혹은 직계자녀가 병역을 면제받은 비율을 조사하고 이것을 이전 정부들의 수치와 비교한 자료 같은 게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단순히 '면제받은 사람만을 나열' 해놓고 까는 건 의미가 없다. 왜냐면 지난 정부나 지지난 정부도 마찬가지거든. 말하자면 고질적인 문제라는 말인데. (일부 기사에는 고위공직자 자녀의 병역면제 비율이 노무현 정부 때보다 낮아졌다는 자료도 있다. 못 믿겠으면 찾아보라.)
적어도 이전의 다른 정권 때와 비교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정권의 고위 공직자 전체 대비 면제자의 비율을 가지고 근거로 삼는다면 누가 뭐라 하겠나. 대통령 본인도 그렇고 장관들이 아니라 대통령 주위에서 (주로 안좋은 쪽으로) 언급되는 사람들이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것까지 옹호하려는 생각은 아니지만, 깔 때 까더라도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깠으면 한다. 이것처럼 확인되지도 않은 허위자료를 가지고 욕하지 말고.
글의 맨 처음에 인용한 목록을 만들고 또 퍼나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대개 이럴 것이다. 1. 이명박 정부가 부패하고 더러운 정부라는 굳은 신념과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2. 어디선가 인터넷에서 남이 쓴 글에 있는 목록을 보고, 3.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퍼간 다음에, 4. '봐라 이렇게 이명박 정부가 더럽지 않느냐'고 이명박 정부의 부패함을 재확인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